해운대 (쓰나미, 재난 대비, 지진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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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쓰나미 걱정 안 해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일본이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그냥 안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해운대를 다시 꺼내 보다가, 그 생각이 꽤 위험한 착각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재난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이었습니다. 쓰나미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영화는 2004년 인도양 쓰나미로 시작합니다. 원양어선에서 조업 중이던 만식은 그 자리에서 연희 아버지를 잃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만식은 해운대에서 아들을 키우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을 안고 사는 사람의 일상이 꽤 묵직하게 그려집니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에도 쓰나미가 올 수 있을까? 지질학자 김 박사는 "올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방재청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무시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가가 경고해도 행정이 움직이지 않는 구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요? 쓰나미(tsunami)란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인해 발생하는 대형 해일을 말합니다. 일반 파도와 달리 수십 킬로미터 파장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가 해안으로 밀려드는 것으로, 속도가 시속 700~900km에 달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비행기만큼 빠른 파도가 해안 도시를 덮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일본 동북부 해안을 초토화시켰고, 약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실종자를 냈습니다. ( 출처: 미국 지질조사국 USGS ) 한반도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지진이 심심찮게 감지되고 있고, 진동 주기도 예전보다 짧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지구 전체가 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예외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재난 대비, 영화가 먼저 물어본 것들 영화에서 지진 해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

부산행 (한국 좀비영화, 사회적 메시지, 생존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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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저는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2016년 부산행이 개봉했을 때 "한국에도 이런 장르가 가능하냐"는 반신반의 속에 영화관을 찾았는데, 막상 보고 나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기차라는 밀폐 공간 안에서 생존과 이기심,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그려낸 영화, 부산행이 왜 지금도 회자되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한국 좀비 블록버스터의 탄생 배경 부산행이 개봉하기 전까지 좀비 장르(Zombie Genre)는 사실상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좀비 장르란 감염이나 죽음으로 되살아난 존재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 및 액션 서사를 말하는데, 그 뿌리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1954년 발표된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가 최초로 좀비적 존재의 법칙을 문학적으로 정립했고, 1968년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이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만들면서 좀비는 단순한 캐릭터에서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올라섰습니다.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는 처음부터 사회 비판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자칫 잘못되면 낯선 타자(他者)에 대한 혐오나 배타적 세계관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그 경계선 위에서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을 통해 좀비를 한국 사회의 거울로 삼는 선택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공포 영화는 귀신이나 심리 스릴러 중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부산행은 그 공식을 완전히 깨버린 첫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개봉 당시 국내외에서 1,15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상위권에 올랐고(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 이후 한국에서도 좀비 장르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직접 체감한 것도 그 흐름이었습니다. 부산행 이후로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작품들이 연달아 나왔으니까요. 밀...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상, 학교폭력,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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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개봉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단순한 학원 액션물이 아닙니다. 1970년대 유신 체제 아래 군대식 문화가 학교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그 시절의 잔재가 꽤 남아 있었는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 이게 우리 윗 세대의 진짜 일상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군사문화가 교실까지 내려온 시절 영화 속 정문고등학교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수용 시설에 가깝습니다. 담임교사가 화가 나면 반 전체에 기합을 주고, 선도부장이 교실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학생들을 통제합니다. 이 구조를 설명하는 데 딱 맞는 개념이 바로 군사문화(軍事文化)입니다. 군사문화란 위계와 복종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조직 문화로, 명령하는 자와 따르는 자 사이에 어떤 이의 제기도 허용되지 않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중앙현관은 선생님 전용이었고, 교실 앞문도 선생님만 사용하는 것이라 학생들은 뒷문으로만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한 세대 위의 분들이 겪은 학교는 그보다 훨씬 더 했으니, 이 영화 속 풍경이 과장이 아니었던 겁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교련(敎鍊)이라는 과목입니다. 교련이란 학생들에게 군사 훈련 방식으로 기초 군사 교육을 시키던 과목으로, 고등학교 정규 커리큘럼에 버젓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에서 교련 수업을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기관으로 기능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고, 영화는 그 정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 즉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무조건 따르는 질서는 당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직장도, 가정도, 사회 전체가 그 논리 위에서 돌아갔습니다. 영화 속 현수의 아버지가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무도와 성적 두 가지를 모두 강요하는 장면은 그 시절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학교폭력의...

살인의 추억 (시대적 배경, 수사 방식, 실제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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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끝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살인의 추억을 처음 봤을 때 딱 그랬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제사건(未濟事件), 즉 범인을 끝내 검거하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결말이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그 허무함은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더 강하게 전달했습니다.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낸 비극 이 영화를 단순한 수사물로 보면 절반만 본 겁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벌어진 시대에 가 있습니다. 1986년, 군사정권 아래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던 시절입니다. 당시 국가 권력은 시민을 통제하는 데 익숙했고, 그 통제 방식은 수사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조용구 형사가 오른발로 용의자를 걷어차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 묘사가 아닙니다. 강압 수사(强壓搜査)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자백이나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 방식을 뜻합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수사의 일부로 묵인되던 시절이었고, 영화는 그 장면 하나로 시대 전체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거친 형사 캐릭터 정도로 이해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치밀하게 시대 비판을 녹여냈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 속 포렌식(forensic) 수사의 부재입니다. 포렌식이란 법의학적 분석 기술, 즉 현장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범인을 특정하는 수사 기법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현장 증거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두만 형사처럼 직감과 경험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거짓 증거를 만들어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무고(誣告), 즉 죄 없는 사람을 허위로 고발하거나 범인으로 지목...

영화 약속 (1990년대 감성, 배우 분석,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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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개봉한 영화 '약속'을 다시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담배 냄새 장면입니다. 조폭 두목과 엘리트 의사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 멜로는, 당시 극장에서 봤을 때도 그렇고 지금 다시 되새겨봐도 여전히 뭔가 가슴 한켠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1990년대 두 글자 영화 전성시대라는 배경 솔직히 이건 제가 당시에 꽤나 혼란스러웠던 부분인데요. 1990년대 중후반에 한국 극장가를 돌아보면, 두 글자짜리 제목의 영화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접속', '편지', '약속', '비트' 같은 제목들이 줄줄이 나왔고, 감성적인 분위기까지 비슷비슷해서 영화를 자주 보던 저는 어떤 장면이 어느 영화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당시 멜로 장르물(genre film)의 포화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장르물이란 특정 공식과 감성 코드를 반복하며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영화 유형을 말하는데, 1990년대 한국 멜로는 비슷한 감성 문법을 공유하며 대량 생산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약속'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캐스팅 덕분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영화는 김유진 감독이 연출했고, 원작은 1996년 이만희 작가의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입니다. 연극을 영화로 옮기는 각색(adaptation) 과정에서 원작의 정서적 골격은 유지하되, 시각적 스펙터클을 더해 대중성을 확보한 케이스입니다. 각색이란 원작의 핵심 구조와 주제를 유지하면서 다른 매체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당시 연극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시도가 많지 않았던 한국 영화계에서 이 작품은 꽤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제가 그 시절 극장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금처럼 OTT 플랫폼이 없던 시절이라 극장을 자주 찾았고, 덕분에 그때 영화들은 스크린에서 직접 본 감각이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약속'도 그렇게 기억...

나 홀로 집에 (추억, 케빈, 크리스마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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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개봉 이후 30년이 넘도록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김없이 TV 편성표에 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나 홀로 집에'입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챙겨봤는데, 최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니 그 재미가 전혀 색 바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헐리우드 코미디, 우리와 웃음 코드가 맞았을까 일반적으로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한국 관객과 웃음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제 경험상 그 말은 상당 부분 맞습니다. 1990년대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성기였고, 당시 극장가는 터미네이터 2 같은 대형 액션 영화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코미디 영화라도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보니 웃어야 할 포인트를 몰라 멍하니 보고 있던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 홀로 집에'는 달랐습니다.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 즉 언어나 문화 이해 없이도 몸으로 웃음을 전달하는 방식의 코미디였기 때문입니다. 도둑들이 함정에 빠져 얼굴에 페인트통을 맞고, 맨발로 유리 조각을 밟는 장면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보편적인 웃음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설마 헐리우드 코미디가 재밌겠어?' 하고 반신 반의 하며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여기에 맥컬리 컬킨의 존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아역 배우로서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 퀄리티(Performance Quality), 즉 연기의 완성도는 또래 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능청스러운 표정과 타이밍 좋은 반응이 영화 내내 화면을 꽉 채웠습니다. 어른 배우들과 맞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아동용 코미디가 아닌,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가족 영화로 완성시킨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대중적이었는지는 당시 소비 문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V에서 방영하지 않을 때는 비디오방에서 직접 빌려볼 정도였으니까요. 비디오 대여(Video Renta...

살인의 추억 (시대적 배경, 수사 방식, 실제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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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끝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살인의 추억을 처음 봤을 때 딱 그랬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제사건(未濟事件), 즉 범인을 끝내 검거하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결말이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그 허무함은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더 강하게 전달했습니다.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낸 비극 이 영화를 단순한 수사물로 보면 절반만 본 겁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벌어진 시대에 가 있습니다. 1986년, 군사정권 아래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던 시절입니다. 당시 국가 권력은 시민을 통제하는 데 익숙했고, 그 통제 방식은 수사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조용구 형사가 오른발로 용의자를 걷어차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 묘사가 아닙니다. 강압 수사(强壓搜査)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자백이나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 방식을 뜻합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수사의 일부로 묵인되던 시절이었고, 영화는 그 장면 하나로 시대 전체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거친 형사 캐릭터 정도로 이해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치밀하게 시대 비판을 녹여냈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 속 포렌식(forensic) 수사의 부재입니다. 포렌식이란 법의학적 분석 기술, 즉 현장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범인을 특정하는 수사 기법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현장 증거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두만 형사처럼 직감과 경험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거짓 증거를 만들어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무고(誣告), 즉 죄 없는 사람을 허위로 고발하거나 범인으로 지목...